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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러니까 20대 초입에 나는 진정 세상과 처음 마주한 듯 그렇게 소위 사회생활(?)을 했던 것 같다. 학과공부에 관심이 없던 나는 첫 눈에 반한 같은 과 여자 친구와 짧은 치마에 높은 구두신고 매일 붙어 다니며 카페를 전전하며 커피도 마셔보고 화장도 하며 킬킬 거렸다. 믿진 않겠지만 술도 처음 마셔보고,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것이 어찌나 신선하던지~~ 써클룸을 돌며 몇 군데 써클도 가입했다. 클래식기타, 볼링반에 가입하고 특히 잘 생긴 오빠들이 많은 볼링반을 사심 가득안고 드나들었다. 매일 볼링을 치며 그게 세상에 다인 것처럼...
그러다 정말 우연히 볼링반 옆에 있던, 시끄러워서 욕을 바가지로 했던 ‘민요연구회’에 누군가에 이끌려(분명 남자였다~)가입했다. 아마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일 것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마음이 약하고 조금 과장하면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품성이었다. ㅎㅎ 그래서였는지 그 세계에 운명처럼 끌리면서 가끔 학내에서 벌어지는 소위 ‘데모’에 그만 몸이 먼저 가버렸다. 그 후 내 생각에 나는 조금씩 변했던 것 같다. 치마를 벗고 바지를 입고, 길었던 머리는 짧게 커트를 치고 진짜 세상과 마주한 것이다.
80년대.. 20대 전에는 들어본 적도, 듣고 싶지도 않았던 군사독재, 군사파쇼라는 말을 그 역사적 맥락을 다 이해도 못한 채 그저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데모를 마치고, 마치 고된 노동을 하고 집에 돌아가듯 그렇게 지친 몸을 버스에 내려놓고 가다 군자교를 건너는데 멀리 ‘군사파쇼’라고 적힌 간판이 보이는 것이다. 헉! 드디어 세상이 바뀌는 건가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보니 ‘군자쇼파’ 였다.(그곳은 군자동 가구거리였다)
그리고 대략 20여년이 흘러 나는 어찌어찌하다 국립공원이라는 생소한 공간에 어색하게 발을 내딛었다. 늘 몸이 먼저 가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발끈하는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 습성은 국립공원을 만나면서 회한으로, 때로는 괴롭고 부끄러운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또 가끔 먹고 살기도 힘든데 국립공원을 지키자고 하는 것에 스스로 심술이 나서 삐딱선을 타기 일쑤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국립공원 전문가들 앞에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국립공원은 내게 사랑이며, 연민이며, 회한이며, 자기부정이며, 위로이며, 무엇보다 뒤늦게 시작한 새로운 삶이었다. 그리고 내게 각인된 ‘국립공원’ 이란 말... 군자쇼파를 군사파쇼로 착각하듯 나는 ‘국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이 보일 때마다 착각을 하곤 했다.(그런데 컴 자판기에서 국립공원을 칠 때는 꼭 오타가 난다^!^)
해발 1187m, 광주, 화순, 담양에 걸친 무등산국립공원.. 마치 관광지를 개발하듯 국립공원 지정을 하는 것에 마음이 쓰여 기분 좋게 맞이하지 못했던 21번째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이 된 이후 중봉 아래 조용히 울고 있는 억새들이 더 더욱 눈에 아른 거린다. 너릿재, 잣고개, 장불재, 중머리재, 바람재, 늦재, 배재, 꼬막재... 곳곳에 서려 있을 아픈 기억들을 그곳 사람들은 운명처럼 살았다. 무엇이 두려우냐며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는 그들의 자존심, 우리들의 자존심이 국립공원으로의 승격으로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멋과 대의를 아는 그 지역의 특색답게 언제까지나 찬란하기를 바랄뿐이다.
↓ 지난 밤, 국시모의 지난 활동을 살펴보고 다가온 2014년을 어떻게 보낼 지,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함께 했다. 그리고 새 날, 광주 도심에서 시작하는 무등산국립공원 옛길 충장사에서 원효사 지나 의상봉까지
가는 발걸음을 함께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충장사에서 시작한다.


↓ 지난 나의 50년, 그리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몇 십 년(?) 세월도 짐작하기 어려운데 어찌 1만 년 전의
시간을 짐작하겠는가! 첨단의 시대에 날씨를 예보하지만 그것도 믿기 어려운데 중생대말이니 백악기후기니 하는
시절 바람과 햇빛, 산의 용트림을 또 어찌 알겠는가! 무등산 곳곳의 너덜이 그저 하나의 돌덩이로만 보이니 말이다.


↓ 저기 지금 내리쬐는 햇빛이 눈부시고 너덜도 우리도 그렇게 세월을 보낸다.


↓ 그렇지만 지금 옛길에서 마주하는 돌들과 나무들을 떠받치고 있는 깊은 땅속은 알리라..
이 산에 깃든 모든 것들의 부침의 세월을...

↓ 무등산은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40년만인 2012년 12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광주시는 무등산이 국립공원이 되면 국제도시로서 광주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질 것이며, 국내외 탐방객 증가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될 것이고, 공원관리비를 국가가 투자함으로서 시비가 절감되고 전문적 공원관리로
생태계 보전 및 훼손지 복원이 가속화될 것을 기대한다고 했었다.
광주시가 바라는 대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참 사람일이란 것이 우습다.
흔히 똥 싸러 갈 때와 똥 싸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똥 싸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전문적 관리를 바란다고 하면서 여전히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또 무엇인지..
광주시민의 남다른 무등산 사랑과 도심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수성은 국립공원을 세심하게 관리하는데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내용이지 그것이 관리권을 미루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립공원으로의 지정은 법과 고시대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관리권한을 갖는 것이며
이에 대한 인수인계는 통상적 절차이다. 따라서 공간까지도 공원관리청에 넘겨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무등산생태문화관리소’ 라고 간판을 단 커다란 공간은 그렇다 치고 그 옆에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셋방을 살듯 자리하고 있다.

↓ 의상대사가 수행을 했다는 의상봉이 여기도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의상봉에 비하면 비교적 편안히 오를 수 있고 정상의 너른 바위에 앉으면
무등산자락에 안겨 있는 듯하다.


무등산/ 이성부
콧대가 높지 않고 키가 크지 않아도
자존심이 강한 산이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그냥 밋밋하게 뻗어 있는 능선이,
너무 넉넉한 팔로 광주를 그 품에 안고 있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느냐.
기쁨에 말이 없고,
슬픔과 노여움에도 쉽게 저를 드러내지 않아,
길게 돌아누워 등을 돌리기만 하는 산.
태어나면서 이미 위대한 죽음이었던 산.
무슨 가슴 큰 역사를 그 안에 담고 있어
저리도 무겁고 깊게 잠겨 있느냐.
저 산이 입을 열어 말할 날이
이제 이를 것이고,
저 산이 몸을 일으켜 나아갈 날이
이제 또한 가까이 오지 않았느냐.
저 산에는
항상 어디 한구석 있는 곳이 있어,
내 서울을 떠나기만 하면
그곳이 나를 반가이 맞아줄 것만 같다.
| 바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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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감칠맛나는 후기라니...^^ 좋습니다요~ |
2014-02-05 01.11  |
| 국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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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햇빛을 받으며 의상봉 정상 너른 바위에 앉아 있던 저 시간.. 함께 여서 더 좋았습니다^!^ |
2014-02-07 1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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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러니까 20대 초입에 나는 진정 세상과 처음 마주한 듯 그렇게 소위 사회생활(?)을 했던 것 같다. 학과공부에 관심이 없던 나는 첫 눈에 반한 같은 과 여자 친구와 짧은 치마에 높은 구두신고 매일 붙어 다니며 카페를 전전하며 커피도 마셔보고 화장도 하며 킬킬 거렸다. 믿진 않겠지만 술도 처음 마셔보고,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것이 어찌나 신선하던지~~ 써클룸을 돌며 몇 군데 써클도 가입했다. 클래식기타, 볼링반에 가입하고 특히 잘 생긴 오빠들이 많은 볼링반을 사심 가득안고 드나들었다. 매일 볼링을 치며 그게 세상에 다인 것처럼...
그러다 정말 우연히 볼링반 옆에 있던, 시끄러워서 욕을 바가지로 했던 ‘민요연구회’에 누군가에 이끌려(분명 남자였다~)가입했다. 아마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일 것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마음이 약하고 조금 과장하면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품성이었다. ㅎㅎ 그래서였는지 그 세계에 운명처럼 끌리면서 가끔 학내에서 벌어지는 소위 ‘데모’에 그만 몸이 먼저 가버렸다. 그 후 내 생각에 나는 조금씩 변했던 것 같다. 치마를 벗고 바지를 입고, 길었던 머리는 짧게 커트를 치고 진짜 세상과 마주한 것이다.
80년대.. 20대 전에는 들어본 적도, 듣고 싶지도 않았던 군사독재, 군사파쇼라는 말을 그 역사적 맥락을 다 이해도 못한 채 그저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데모를 마치고, 마치 고된 노동을 하고 집에 돌아가듯 그렇게 지친 몸을 버스에 내려놓고 가다 군자교를 건너는데 멀리 ‘군사파쇼’라고 적힌 간판이 보이는 것이다. 헉! 드디어 세상이 바뀌는 건가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보니 ‘군자쇼파’ 였다.(그곳은 군자동 가구거리였다)
그리고 대략 20여년이 흘러 나는 어찌어찌하다 국립공원이라는 생소한 공간에 어색하게 발을 내딛었다. 늘 몸이 먼저 가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발끈하는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그 습성은 국립공원을 만나면서 회한으로, 때로는 괴롭고 부끄러운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또 가끔 먹고 살기도 힘든데 국립공원을 지키자고 하는 것에 스스로 심술이 나서 삐딱선을 타기 일쑤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국립공원 전문가들 앞에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국립공원은 내게 사랑이며, 연민이며, 회한이며, 자기부정이며, 위로이며, 무엇보다 뒤늦게 시작한 새로운 삶이었다. 그리고 내게 각인된 ‘국립공원’ 이란 말... 군자쇼파를 군사파쇼로 착각하듯 나는 ‘국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이 보일 때마다 착각을 하곤 했다.(그런데 컴 자판기에서 국립공원을 칠 때는 꼭 오타가 난다^!^)
해발 1187m, 광주, 화순, 담양에 걸친 무등산국립공원.. 마치 관광지를 개발하듯 국립공원 지정을 하는 것에 마음이 쓰여 기분 좋게 맞이하지 못했던 21번째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이 된 이후 중봉 아래 조용히 울고 있는 억새들이 더 더욱 눈에 아른 거린다. 너릿재, 잣고개, 장불재, 중머리재, 바람재, 늦재, 배재, 꼬막재... 곳곳에 서려 있을 아픈 기억들을 그곳 사람들은 운명처럼 살았다. 무엇이 두려우냐며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는 그들의 자존심, 우리들의 자존심이 국립공원으로의 승격으로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멋과 대의를 아는 그 지역의 특색답게 언제까지나 찬란하기를 바랄뿐이다.
↓ 지난 밤, 국시모의 지난 활동을 살펴보고 다가온 2014년을 어떻게 보낼 지,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함께 했다. 그리고 새 날, 광주 도심에서 시작하는 무등산국립공원 옛길 충장사에서 원효사 지나 의상봉까지
가는 발걸음을 함께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충장사에서 시작한다.
↓ 지난 나의 50년, 그리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몇 십 년(?) 세월도 짐작하기 어려운데 어찌 1만 년 전의
시간을 짐작하겠는가! 첨단의 시대에 날씨를 예보하지만 그것도 믿기 어려운데 중생대말이니 백악기후기니 하는
시절 바람과 햇빛, 산의 용트림을 또 어찌 알겠는가! 무등산 곳곳의 너덜이 그저 하나의 돌덩이로만 보이니 말이다.
↓ 저기 지금 내리쬐는 햇빛이 눈부시고 너덜도 우리도 그렇게 세월을 보낸다.
↓ 그렇지만 지금 옛길에서 마주하는 돌들과 나무들을 떠받치고 있는 깊은 땅속은 알리라..
이 산에 깃든 모든 것들의 부침의 세월을...
↓ 무등산은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40년만인 2012년 12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광주시는 무등산이 국립공원이 되면 국제도시로서 광주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질 것이며, 국내외 탐방객 증가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될 것이고, 공원관리비를 국가가 투자함으로서 시비가 절감되고 전문적 공원관리로
생태계 보전 및 훼손지 복원이 가속화될 것을 기대한다고 했었다.
광주시가 바라는 대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참 사람일이란 것이 우습다.
흔히 똥 싸러 갈 때와 똥 싸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똥 싸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전문적 관리를 바란다고 하면서 여전히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또 무엇인지..
광주시민의 남다른 무등산 사랑과 도심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수성은 국립공원을 세심하게 관리하는데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내용이지 그것이 관리권을 미루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립공원으로의 지정은 법과 고시대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관리권한을 갖는 것이며
이에 대한 인수인계는 통상적 절차이다. 따라서 공간까지도 공원관리청에 넘겨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무등산생태문화관리소’ 라고 간판을 단 커다란 공간은 그렇다 치고 그 옆에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셋방을 살듯 자리하고 있다.
↓ 의상대사가 수행을 했다는 의상봉이 여기도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의상봉에 비하면 비교적 편안히 오를 수 있고 정상의 너른 바위에 앉으면
무등산자락에 안겨 있는 듯하다.
무등산/ 이성부
콧대가 높지 않고 키가 크지 않아도
자존심이 강한 산이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그냥 밋밋하게 뻗어 있는 능선이,
너무 넉넉한 팔로 광주를 그 품에 안고 있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느냐.
기쁨에 말이 없고,
슬픔과 노여움에도 쉽게 저를 드러내지 않아,
길게 돌아누워 등을 돌리기만 하는 산.
태어나면서 이미 위대한 죽음이었던 산.
무슨 가슴 큰 역사를 그 안에 담고 있어
저리도 무겁고 깊게 잠겨 있느냐.
저 산이 입을 열어 말할 날이
이제 이를 것이고,
저 산이 몸을 일으켜 나아갈 날이
이제 또한 가까이 오지 않았느냐.
저 산에는
항상 어디 한구석 있는 곳이 있어,
내 서울을 떠나기만 하면
그곳이 나를 반가이 맞아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