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경계인
듣기만 해도 마음에 평안을 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지친 날에 힘을 준다. 그녀는 조용하고 은근한 평소 모습처럼 올해 초 슥 다가와 평생회원이 되어주었다. 신입회원이지만 누구보다 국시모를 잘 알고 우리의 활동을 물심양면 후원해주는 정현주 회원을 만났다. (평소 그녀는 나를 손팀장님이라, 나는 그녀를 정국장님이라 부른다.)
나무향기 가득한 서재에서 정현주 회원
손팀] 사무실에 국장님이 처음 찾아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해요. 조금 지쳐 보이셨는데 음성이 너무 좋았어요. 학회 그리고 국시모와의 인연을 들려주세요.
정국] 처음 만난 게 불광동 사무실이었지요? 좀 걱정됐는데 국시모에서 반갑게 맞아 주어 정말 기쁘고 고마웠어요. 그 즈음이 크게 아프고 난 다음이라서 조금 지쳐 보였나 봐요.
2017년에 학회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선배의 추천으로 이력서를 넣었고 우여곡절 끝에 일하게 되었지요. 시절인연이라고 선배에게 구인 의뢰를 했던 분이 국시모 정인철 국장님이셨는데, 이렇게 한 공간에서까지 지내게 되었네요.
이곳 홍은동으로 옮기면서도 함께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학회와의 인연은 이렇고, 국시모와의 인연은 사심 가득한 인연이지요. 항상 활동가분들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오래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고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체력 여건 상 현장에서 같이 뛰진 못하겠지만, 평지와 사무실에서 일손이 필요할 땐 언제든 일꾼 추가해 주세요. 산은 바라보는 것으로! 하하.
손팀] 내공이 느껴지는 국장님!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의 추억 등 국장님의 사적인 이야기가 궁금해요.
정국] 내공이 느껴져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어린 시절에는 착하다, 편안하다, 듬직하다, 안정적이다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어요. 여전히 주위 사람들에게서 많이 듣기도 하고요. 하지만 가까이에서 저를 만났거나 만나는 사람들은 다르게 표현해요. 팀장님도 느꼈지요? 할 말은 많지만 신비주의를 위해 하지 않겠어요.
모범생으로 표현되는 모습으로, 한편으론 다른 모습도 가진 채 생활 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 보니 학교, 사회의 규칙이나 질서를 따랐다기보다 위장하며 살았다고 할까요.
중·고등학교 시절 자주 실외화를 신은 채 규정을 어기고 교실에 들어갔는데 선도반이나 교사들이 등교하기 이전에 학교에 도착하는 거예요, 지적받지 않도록.
조회시간에 복장 모범생으로 전교에 영상이 나간 적이 있어요. 규정들이 어지간히도 많았는데 그것을 제가 거의 완벽하게 준수한 거지요. 벌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누가 뭐라고 하는 게 정말 싫었어요.
나서서 틀을 깨지는 못하지만, 경계에서 짜릿하게 넘나드는 기질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듯해요. 짜릿하게 경계인으로 살고 싶어요.
살았던 동네는 정말 추억 속의 공간이 되었어요. 나고 자랐던 동네가 모두 개발로 바뀌어서 기억 속에만 존재해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고향이 없는 느낌이에요. 안타까운 일이죠. 얼마나 더 개발을 해야 멈출까요. 요즘은 무서워지기도 해요. 그래도 기억나는 추억은 한겨울에 눈이 잔뜩 쌓인 날 쌀 포대 깔고 썰매 탄 거예요. 아, 누차 강조하지만 저 서울사람이에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어요!
손팀] 처음 만남 때 실은 저와 또래라 생각했는데 결혼 10년차의 훌쩍 언니셨죠. 남편 이야기를 할 때엔 애정이 느껴져요. 결혼, 추천입니까?
정국] 남편 이야기를 하는 제 말에 애정이 담겨 있었나요? 함께 한 시간이 쌓일수록 뭐랄까 동지애가 생기는 것 같아요. 때로는 인생이라는 큰 배를 함께 타고 가는 느낌, 때로는 인생이라는 바다 위를 함께 지나가는 두 척의 배 같은 느낌이에요.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의지가 되는 이상적인 관계를 꿈꾸지만 사실 제가 더 많이 의지하고 있을 거예요.
결혼을 추천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때그때 다르다고 말하고 싶네요. 사람마다 삶의 모습과 기준이 다르고, 무시로 상황이 바뀌잖아요. 결혼을 선택할 때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저는 제일 중요한 것이 대화와 유머인 것 같아요. 서로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때로 난감한 삶의 고비 앞에서 유머로 서로 웃게 해 줄 수 있다면 그 사람과 한 번 살아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손팀]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여요. 요즘 국장님의 최대 관심사는 무언가요?
정국]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인가 늘 궁금해요. 고민의 양보다 실천의 양이 한없이 적어 괴로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늘 잘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각 개인의 의식과 실천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 있고, 사회 전체 제도나 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지점들이 있으니까요.
요즘 최대 관심사는 비닐과 플라스틱이에요. 음식을 자주 하지는 않는데, 가끔 장을 보고 난 후에 재료를 손질하고 나면 나오는 비닐의 양이 거의 재료 부피의 2배 이상 되요. 비닐과 플라스틱은 소각을 하거나 매립을 해도 문제가 되고, 해양 쓰레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더라고요.
개인의 사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고민이에요.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제가 사용한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뒤에야 분해되는 것, 바다 위의 플라스틱 섬이 되는 것, 무엇보다 여러 생명들(새, 물고기, 고래 등)의 죽음을 초래하는 일은 정말 슬픈 일이에요.
손팀] ‘지금의 나로 미루어 보아……’가 아닌 그저 내가 원하는 것, 닿고 싶은 곳, 기대하는 삶은 어떤가요?
정국] 요즘 자주 ‘여긴 어디? 난 누구?’라는 질문을 떠올려요. 주로 업무시간 중에 그러는데, 아마 난감하거나 어이가 없는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질문만 하고 답을 찾을 사이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쓰거나 메신저에 응대를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봐요.
팀장님 말씀을 듣고 떠올려 보니, 조금 덜 불안해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경계인으로 평생 살아가겠지만,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누구나 경계인이 아닐까요? 자신의 삶 속에서는 주인공이지만, 타인의 삶 속에서는 경계인인 것 같아요.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저녁을 지어 먹은 뒤, 동네 어귀를 가볍게 산책하고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집으로 향하는 일상. 그런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쌓이는 삶, 그런 삶을 기대해요. 곧 만들어 보려고요.^^
요즘 업무가 많아 피곤할 텐데도 정현주 회원의 답변은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정성스러웠다.
가끔 지나친 민원에 하소연을 하다가도 손은 어느새 바삐 움직이며 일을 처리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아, 보통 분이 아니구나!’ 했었고, 버벅이며 힘든 감정을 토로하는 나에게 보내는 눈빛을 보며 ‘아, 따뜻하다!’ 했었다.
조금은 독특하게 국시모와 인연을 맺은 보통이 아니게 따뜻한 정현주 회원이 국시모 안에서 보통의 따뜻함 정도는 느끼며 자유로운 경계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자유로운 경계인
듣기만 해도 마음에 평안을 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지친 날에 힘을 준다. 그녀는 조용하고 은근한 평소 모습처럼 올해 초 슥 다가와 평생회원이 되어주었다. 신입회원이지만 누구보다 국시모를 잘 알고 우리의 활동을 물심양면 후원해주는 정현주 회원을 만났다. (평소 그녀는 나를 손팀장님이라, 나는 그녀를 정국장님이라 부른다.)
나무향기 가득한 서재에서 정현주 회원
손팀] 사무실에 국장님이 처음 찾아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해요. 조금 지쳐 보이셨는데 음성이 너무 좋았어요. 학회 그리고 국시모와의 인연을 들려주세요.
정국] 처음 만난 게 불광동 사무실이었지요? 좀 걱정됐는데 국시모에서 반갑게 맞아 주어 정말 기쁘고 고마웠어요. 그 즈음이 크게 아프고 난 다음이라서 조금 지쳐 보였나 봐요.
2017년에 학회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선배의 추천으로 이력서를 넣었고 우여곡절 끝에 일하게 되었지요. 시절인연이라고 선배에게 구인 의뢰를 했던 분이 국시모 정인철 국장님이셨는데, 이렇게 한 공간에서까지 지내게 되었네요.
이곳 홍은동으로 옮기면서도 함께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학회와의 인연은 이렇고, 국시모와의 인연은 사심 가득한 인연이지요. 항상 활동가분들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오래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고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체력 여건 상 현장에서 같이 뛰진 못하겠지만, 평지와 사무실에서 일손이 필요할 땐 언제든 일꾼 추가해 주세요. 산은 바라보는 것으로! 하하.
손팀] 내공이 느껴지는 국장님!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의 추억 등 국장님의 사적인 이야기가 궁금해요.
정국] 내공이 느껴져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어린 시절에는 착하다, 편안하다, 듬직하다, 안정적이다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어요. 여전히 주위 사람들에게서 많이 듣기도 하고요. 하지만 가까이에서 저를 만났거나 만나는 사람들은 다르게 표현해요. 팀장님도 느꼈지요? 할 말은 많지만 신비주의를 위해 하지 않겠어요.
모범생으로 표현되는 모습으로, 한편으론 다른 모습도 가진 채 생활 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 보니 학교, 사회의 규칙이나 질서를 따랐다기보다 위장하며 살았다고 할까요.
중·고등학교 시절 자주 실외화를 신은 채 규정을 어기고 교실에 들어갔는데 선도반이나 교사들이 등교하기 이전에 학교에 도착하는 거예요, 지적받지 않도록.
조회시간에 복장 모범생으로 전교에 영상이 나간 적이 있어요. 규정들이 어지간히도 많았는데 그것을 제가 거의 완벽하게 준수한 거지요. 벌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누가 뭐라고 하는 게 정말 싫었어요.
나서서 틀을 깨지는 못하지만, 경계에서 짜릿하게 넘나드는 기질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듯해요. 짜릿하게 경계인으로 살고 싶어요.
살았던 동네는 정말 추억 속의 공간이 되었어요. 나고 자랐던 동네가 모두 개발로 바뀌어서 기억 속에만 존재해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고향이 없는 느낌이에요. 안타까운 일이죠. 얼마나 더 개발을 해야 멈출까요. 요즘은 무서워지기도 해요. 그래도 기억나는 추억은 한겨울에 눈이 잔뜩 쌓인 날 쌀 포대 깔고 썰매 탄 거예요. 아, 누차 강조하지만 저 서울사람이에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어요!
손팀] 처음 만남 때 실은 저와 또래라 생각했는데 결혼 10년차의 훌쩍 언니셨죠. 남편 이야기를 할 때엔 애정이 느껴져요. 결혼, 추천입니까?
정국] 남편 이야기를 하는 제 말에 애정이 담겨 있었나요? 함께 한 시간이 쌓일수록 뭐랄까 동지애가 생기는 것 같아요. 때로는 인생이라는 큰 배를 함께 타고 가는 느낌, 때로는 인생이라는 바다 위를 함께 지나가는 두 척의 배 같은 느낌이에요.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의지가 되는 이상적인 관계를 꿈꾸지만 사실 제가 더 많이 의지하고 있을 거예요.
결혼을 추천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때그때 다르다고 말하고 싶네요. 사람마다 삶의 모습과 기준이 다르고, 무시로 상황이 바뀌잖아요. 결혼을 선택할 때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저는 제일 중요한 것이 대화와 유머인 것 같아요. 서로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때로 난감한 삶의 고비 앞에서 유머로 서로 웃게 해 줄 수 있다면 그 사람과 한 번 살아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손팀]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여요. 요즘 국장님의 최대 관심사는 무언가요?
정국]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인가 늘 궁금해요. 고민의 양보다 실천의 양이 한없이 적어 괴로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늘 잘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각 개인의 의식과 실천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 있고, 사회 전체 제도나 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지점들이 있으니까요.
요즘 최대 관심사는 비닐과 플라스틱이에요. 음식을 자주 하지는 않는데, 가끔 장을 보고 난 후에 재료를 손질하고 나면 나오는 비닐의 양이 거의 재료 부피의 2배 이상 되요. 비닐과 플라스틱은 소각을 하거나 매립을 해도 문제가 되고, 해양 쓰레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더라고요.
개인의 사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고민이에요.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제가 사용한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뒤에야 분해되는 것, 바다 위의 플라스틱 섬이 되는 것, 무엇보다 여러 생명들(새, 물고기, 고래 등)의 죽음을 초래하는 일은 정말 슬픈 일이에요.
손팀] ‘지금의 나로 미루어 보아……’가 아닌 그저 내가 원하는 것, 닿고 싶은 곳, 기대하는 삶은 어떤가요?
정국] 요즘 자주 ‘여긴 어디? 난 누구?’라는 질문을 떠올려요. 주로 업무시간 중에 그러는데, 아마 난감하거나 어이가 없는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질문만 하고 답을 찾을 사이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쓰거나 메신저에 응대를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봐요.
팀장님 말씀을 듣고 떠올려 보니, 조금 덜 불안해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경계인으로 평생 살아가겠지만,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누구나 경계인이 아닐까요? 자신의 삶 속에서는 주인공이지만, 타인의 삶 속에서는 경계인인 것 같아요.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저녁을 지어 먹은 뒤, 동네 어귀를 가볍게 산책하고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집으로 향하는 일상. 그런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쌓이는 삶, 그런 삶을 기대해요. 곧 만들어 보려고요.^^
요즘 업무가 많아 피곤할 텐데도 정현주 회원의 답변은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정성스러웠다.
가끔 지나친 민원에 하소연을 하다가도 손은 어느새 바삐 움직이며 일을 처리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아, 보통 분이 아니구나!’ 했었고, 버벅이며 힘든 감정을 토로하는 나에게 보내는 눈빛을 보며 ‘아, 따뜻하다!’ 했었다.
조금은 독특하게 국시모와 인연을 맺은 보통이 아니게 따뜻한 정현주 회원이 국시모 안에서 보통의 따뜻함 정도는 느끼며 자유로운 경계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