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부가 2015년에 비밀TF를 구성했고, 사업자를 지원해 설악산케이블카사업을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는 환경정책제도개선위원회의 발표가 있었다. 한마디로 시험 감독관인 환경부가 사업자를 대신해 시험을 치러줬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 해당TF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환경부 전 고위관계자는 ‘비밀TF’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업자 양양군이 삭도 설치를 재요청해 와 효율적인 검토를 위해 구성한 것일 뿐,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았어야 할 ‘비밀’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안에 있어 ‘비밀’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비밀’이 아니라, ‘TF’이기 때문이다.
정부조직 상 TF(대책반)는 특정한 임무를 할당받아 편성되는 임시조직을 말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설악산케이블카TF’는 실제 존재했다는 것은 팩트다. 최근 121차 국립공원위원회 개최까지 설악산케이블카사업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TF가 구성된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환경부가 문제시된 TF를 구성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제도개선위원회 발표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인 설악산케이블카사업이 과거 두 차례의 국립공원위원회 부결에도 불구하고 재추진된 배경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정책건의와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의 대통령의 지시, 경제장관회의에서의 후속조치에 따른 것으로 확인되었다(제도개선위원회 발표 보도자료 중).........
제도개선위원회 발표 자료를 재분석해 보면,
‘제 6차 무역투자진흥회의’는 2014년 8월 12일에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전경련 건의와 동일한 ‘친환경 케이블카 확충 방안’을 발표했고, 구체적으로 ‘친환경케이블카 확충 TF’를 구성하겠다는 적극적인 추진계획을 내놓았다.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설악산케이블카사업을 조기에 추진하라”는 업무지시를 내렸다.
문체부는 대통령지시에 따라 2015년 1월 27일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친환경케이블카 확충 TF’회의를 운영했다. 환경부가 이 TF에 참여해 맡은 역할이 ‘사업자 양양군의 설악산케이블카 설치 컨설팅과 변경(안)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를 근거로 환경부는 2015년 4월 30일부터 8월 28일가지 환경부 자연보전국장을 단장으로 한 ‘삭도TF’를 운영했다. 바로 이 ‘TF’가 현재 논란이 된 ‘비밀TF’이다.
결국, 환경부가 만든 ‘TF’는 단순한 임시조직이 아니라, 전경련의 제안과 대통령의 지시로 운영된 문체부 ‘친환경케이블카 확충 TF’의 후속 ‘TF’이다. 사업자 양양군에 대한 설악산케이블카 설치 컨설팅과 변경(안)을 지원한다는 분명한 목적아래 운영된 실체 있는 조직인 것이다.
환경부의 이런 행위는 형식적인 직무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질은 정당한 공무행위가 아니라, 권한 이외의 의무 없는 일을 수행한 것이다. 적폐정부가 벌인 다른 사안들과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환경부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을 TF에 참여하도록 지시한 행위 역시, 의무 없는 일을 지시한 것이고 그들의 권리행사도 방해한 것이다.
종합해 보면, ‘설악산케이블카TF’의 실체는 공정의 기함을 잃은 환경부의 모습이었다. 따라서 ‘비밀’논란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할 것이다. ‘TF’라는 실체 상 하자가 존재한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제도개선위원회 발표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살펴봤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이제 공은 환경부로 넘어갔다. 설악산케이블카사업을 청산하고, 지난 갈등의 해소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행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것만이 환경부가 공정을 회복할 길이고 가야 할 길이다.
(작성일: 2018년 4월)
2018년 봄을 맞아 국시모 학술위원인 조우 상지대 교수를 만나 작은 대담을 나눴다. 태백산국립공원 지정과정에서 책임연구를 수행했던 조 교수로부터 당시, 용도지구가 기형적으로 지정된 배경과 삼수 만에 국립공원이 가능했던 사연을 듣고자 함이었다. 조 교수는 과거 두 차례나 무산된 이유가 분명한 소통부족의 결과였고, 세 번째는 가능했던 것이 소통의 자세를 바꿨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태백산국립공원의 보전지구를 확대하려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소통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조 교수와 손보경 운영팀장의 작은 대담 요약한 것이다.
손] 태백산은 세 번의 시도 끝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전에는 왜? 실패했었나.
조] 첫 시도가 있었던 때를 1999년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태백산은 민족의 영산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자연환경과 문화적 가치, 백두대간이라는 지리적 위치, 경관 우수성 등 모든 면에서도 국립공원 지정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지정될 줄 알았다. 하지만 폐광문제로 인한 지역 내 갈등이 변수로 작용했다. 지역분위기가 침체된 상태였고, 여론도 좋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검토단계에서 무산되었다.
두 번째가 2010년이었다.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강원랜드가 완성됐던 시기였다. 강원랜드는 당초 태백시에 건설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주민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래서 정선이 유치를 했다. 말 그대로 강원랜드가 빵(?)하고 터졌다. 이때 태백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그때 내부적으로 나온 타개책이 국립공원이다. 환경부와 공단이 상당 수준까지 지정방안을 검토했었다. 그러나 결국 지역여론이 문제였다. 역시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강력한 반대였다.
손] 드디어 세 번째다. 삼수에 도전한 배경이 궁금하다.
조] 자연공원(국립, 도립, 군립공원)은 자연공원법에 따라 10년에 한 번씩 공원계획타당성검토라는 것을 진행한다. 2014년에 강원도가 ‘강원도 도립공원종합발전계획’ 안에 자연자원조사, 공원계획타당성검토, 공원별 보전관리계획 등 3개의 조사와 계획을 묶어 연구용역을 발주했었다. 연구수행 중에 백두대간 중 국립공원을 제외한 지역들은 현장관리가 안 되는 한계를 직시했다. 그래서 도립공원으로 관리되던 태백산을 다시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태백산의 상징성과 역사·문화 자원을 보존하자고 강원도에 제안했다. 다행히 생태축인 백두대간 관리 실태를 이해하고 있어 큰 도움이 됐다.
손] 아직 지정절차가 본격적인 것은 아닌듯하다. 실제 추진과정은 어땠나?
조] 2015년에 환경부가 움직였다. 태백산국립공원 지정 타당성 검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연구책임을 맡게 되었다. 당시 신설된 공단의 미래전략실이 행정적 지원을, 한국환경생태학회와 건아컨설턴트가 컨소시움을 구성해 타당성 검토연구가 실제 추진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림청이 문제였다. 국립공원 지정후보대상지가 대부분 산림청이 관리하던 국유림지역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처음 제안된 127㎢ 중 산림청 경제림에 해당하는 지역 등은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손] 여기서 잠깐! 산림청도 보호지역 관할 부처 아닌가? 반대했다는 것에 납득이 안 간다.
조] 백두대간보호지역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데 굳이 국립공원으로 중복지정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실상은 경제림 사업시행이 제한될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 같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나무도 못 자르고, 숲 가꾸기 사업도 진행하지 못해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사항들은 부처협력을 통해 충분한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이다. 부처이기주의로 밖에 볼 수 없다. 먼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보호지역관리가 통합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손] 끝도 없이 반대다. 반대의 끝이 안 보인다.
조] 하하. 이제 다 와간다. 반대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영월과 태백지역은 처음부터 극렬히 반대했다. 정선도 국립공원 이 지정되면 지역개발사업이 저해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함께했다. 봉화지역은 반대이유가 좀 달랐다. 이미 60년 전 부터 문화재보호구역으로 규제받아왔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 동안 문화재보호구역이라는 강력한 규제 안에서도 살았는데 국립공원은 약한 규제”라는 인식이 있었다. 일부 주민들이 국립공원명품마을에 관심이 있었다. 먼저 이분들이 무등산국립공원 명품마을을 답사한 후, 찬성 쪽으로 마음을 돌리셨다. 영월, 태백, 정선지역 주민들은 계속해서 반대했다. 정말 극렬하게 반대했고, 주민설명회까지 무산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연구진과 공단 미래전략실 팀원들은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오피니언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마을주민들을 모아 소규모 설명회도 진행하고, 토크콘서트도 열었다. 계속해서 설득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보니 하나둘 마을분위기가 바뀌어가는 게 느껴졌다. 얼마 후 극적으로 분위기가 반전되었고, 찬성여론이 더욱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노력의 시간이 모아져 결국에 2016년 8월 22일, 태백산이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손] 정말 고생하신 것 같다. 태백산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남다를 것 같은데.
조] 물론이다. 개인적으로는 애증의 대상이다. 국립공원 지정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태백산은 그 존재 자체가 어디에도 담기 힘든 큰 존재라 생각해왔다. 다른 이야기지만, 백두대간이 가진 중요한 의미중 하나가 불교문화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은 대부분 백두대간을 따라 위치해 있다. 인접 산줄기에 있는 사찰들은 선불교 유산이라 평가받는다. 생각해보자. 정선 정암사, 소백산 부석사, 춘양 각화사, 삼척 영은사에 가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백산을 태백시에만 국한하지 않고 광역적으로 인식해 왔다. 실제로 태백산 정상에서 사방을 보면 산체가 매우 큼을 몸소 느낄 수 있다. 그만큼 큰 존재고, 계속해서 연구해보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손] 그럼에도 태백산국립공원은 태백산의 극히 일부만 지정됐다. 확대할 수는 없는지.
조] 당장 쉽게 확대가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산림청, 사찰, 동국대를 설득해야 하고, 봉화군 역시 광범위한 태백산의 범주에 속하는 만큼 계속해서 소통해야 한다. 남북동서로 넓게 분포한 지역들이 태백산국립공원으로 모두 포함될 수 있도록 하려면 여러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시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와 정부, 지자체, 전문가, 토지소유와 관련된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론화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올해 국립공원타당성검토기준이 만들어 진다. 이를 근거로 내년부터 국립공원별 용도지구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게 된다. 2021년이 되면 용도지구가 대폭 재편해야한다. 이 시점이 태백산국립공원 확대방안이 마련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손]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을 좋아한다. 그중 태백산에 대한 호감이 크다. 눈 내린 태백산은 전 세계 어딜 가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태백산 탐방객의 99%가 정상에 오른다. 태백산이 망가지는 직접적인 이유다. 새해 태백산에 올라 정기를 받으려는 사람들은 그 곳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그런 분들이기에 태백산이 망가지는 아픔도 헤아릴 줄 알 것이라 기대한다. 태백산이 어떤 모습으로 가야하는지는 태백산의 아픔을 이해하는 작은 관심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태백산이 보존된다. 이제 한걸음이다. 서로 소통하며 태백산을 알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조우 교수님은 상지대학교에서 근무하며, 한국환경생태학회 총무이사와 국시모 학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연공원을 다니면서 ‘경이롭다’거나 ‘아름답다’보다 더 많이 드는 생각은 그 안에 숨겨진 ‘안타까움’이다. 옛적부터 원주민들이 자연을 지키며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이 유럽인에 의해 파괴되면서 어머니 대자연이라는 원주민의 전통적 삶의 양식은 잊혀진지 오래고 외세에 의해 정복당한 아픈 흔적만이 국립공원의 역사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공원을 여행하면서 문득 미국 국립공원청의 엠블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앰블럼을 구성하는 내용물은 모두 미국 국립공원을 대표할만한 핵심적인 자연을 상징하는 것들로 1)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세콰이어국립공원의 자이언트세콰이어와 2)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국립공원의 대표 동물인 바이슨이 각각 동식물을 대표하며, 3) 글레이셔국립공원의 눈 쌓인 산과 호수는 아름다운 경관을 대표한다. 그리고 4) 역사문화가 있다. 미국에서 국립공원 엠블럼의 이름은 ‘화살촉’으로 불린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이 돌화살촉이 지니는 의미를 역사적 가치라고 말하면서 국립공원이 지향하는 자연경관, 동식물, 역사문화를 포괄하는 엠블럼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인 동식물과 자연경관을 엠블럼에 사용한 것은 당연히 이해가 가는데, 이 자연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사냥을 위한 돌화살촉이라는 것에 단순히 역사문화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보기에는 좀 형식적인 듯하다. 소설을 쓴 사람과는 달리 평론하는 사람은 뭔가 다른 상상을 하게 되는데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없는 이방인에게 이 엠블럼은 마치 어설픈 평론가처럼 다른 상상을 펼칠 여지를 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냥용 물건이 자연을 에워싸고 있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자연을 지키며 살아온 이곳의 원래 주인인 인디언들을 모두 잔인하게 쫓아내고 점령한 유럽인들이 다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인디언의 상징인 화살촉을 공원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 등이 그 속에 숨어있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발동케 한다. 별 의미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뭔가 다른 뜻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무슨 장치가 이 안에 녹아들어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 이 엠블럼을 만든 사람은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 따위로 말이다.
옐로우스톤국립공원 비지터센터에 전시된 돌화살촉을 보며 꽤나 깊은 상상을 해 봤다. 국립공원 엠블럼은 국립공원제도가 생긴 이후 한참 후인 1951년에야 만들어져 미국 국립공원 역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돌화살촉이라는 것이 형태가 대부분 유사하겠지만 이곳에 전시된 돌화살촉은 유독 이 엠블럼과 똑같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부분들이 모두 실제를 기반으로 한 것과 같이 화살촉은 꼭 이 화살촉을 모델로 그린 것 같다. 옐로우스톤국립공원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이 돌화살촉과 함께 초기 약탈자들의 사냥으로 인해 바이슨 해골이 산을 이룬 끔찍한 역사의 한 장면이 전시되어있는 비지터센터에 꼭 들르기를 바란다. 공원 북쪽에 위치한 Albright Visitor Center 지하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Albright Visitor Center 지하전시관에 전시된 돌화살촉
많은 공원을 다니면서 잡다한 생각 끝에 내린 개인적 결론이다. 뒤늦게 제작된 이 엠블럼은 인디언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잔인하게 빼앗았던 미국 서부개척의 과거를 반성하고자 하는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디언의 돌화살촉은 버팔로를 사냥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온 인디언들과 자연이 다르지 않음을 의미하며 이 땅의 주인이 인디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국립공원의 주인이 정부가, 신대륙 정착민이 아닌 인디언이라는 것임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자신들이 관리하고 있지만 이곳을 경이롭고 아름답게 유지한 근본적 힘은 인디언들이며, 과거의 반성을 통해 상징적으로나마 인디언들의 땅임을 알려주는 장치를 국립공원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
지금도 온갖 훼손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고, 더 많은 훼손을 하지 못해 안달인 우리나라 국립공원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엠블럼을 만든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우리는 이 땅의 한 부분이며 땅 또한 우리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결국 형제입니다”
Albright Visitor Center 지하전시관에 전시된 1870년 바이슨 해골로 만들어진 산의 사진
대통령과 국립공원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은퇴했다면 많건 적건 누군가는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이럴 때 그가 좋아했던 공간이 있고, 비록 같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 공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 비슷한 관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리울 때 찾는 봉하마을은 수많은 지지자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가슴 한편에 쌓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하는 공간이 된다. 비록 지금은 그가 없지만 문득 그리울 때 찾아가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잠시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휴가차 방문했던, 어릴 적 추억이 있던 거제의 한 섬도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선사했었던 것은 틀림없다.
대통령으로서 퇴임 후에도 자신을 기억해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장소를 본인 재임시절 국가 보호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 어떨까? 대통령이 퇴임하면 세금을 들여 기념관이나 기념사업을 하지만 대부분 새로 짓는 건축물에 과거의 시간이 고정되어버린 유물 같은 소품이나 사진, 기록물이 전시된 공간을 꾸미는데, 이 공간은 대통령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마음을 공유한다는 감정적 연결고리로는 그다지 역할을 하지 않는다. 아쉽게도 전 대통령이 생각날 때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대통령이라면 자신이 좋아하고 추억이 있는 산을, 바다를 좋아하는, 강을 좋아하는 대통령이라면 역시 추억할 수 있는 장소를 재임기간 중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대통령이 사랑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마케팅보다 훌륭한 보전마케팅이자 여가휴양마케팅이 아닐까? 대통령이 어린 시절 소풍을 가서 자연과 함께 뛰어놀던 곳, 방황하던 청년시절 꿈을 갖게 만든 산,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마음을 다잡은 바다 등등 말이다. 미국에 이런 생각을 실현한 법이 있는데, 1906년 루스벨트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역사문화 유산법(Antiquities Act)이 그것이다.
미국 자연보호 역사의 핵심 인물인 존 뮤어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국가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에서 관리하고 있는 국가공원시스템은 국가공원(National Park; 국립공원)을 포함하여 국가기념물(National Monument), 국가해안(National Seashore), 국가하천(National River), 국가휴양지(National Recreation Area) 등 다양하다. 이 중 ‘국가기념물’의 지정권한을 대통령에 부여한 것이다. 당시 보호지역 지정에 대한 논란이 많았던 그랜드캐년 또한 이 법에 의해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어 현재의 국가공원(국립공원)이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에 의해 150개소 이상의 국가기념물이 지정되었으며, 오바마대통령은 이 법을 활용하여 무려 26개소를 지정하여 가장 많은 국가보호지역을 새로 만든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개발을 지향하는 현재의 트럼프대통령을 포함하여 몇몇 대통령은 이 법을 활용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대통령은 이 법을 활용하여 보호지역 확대에 앞장섰다.
미국 대통령이 지정한 국가 기념물
(자료: National Parks Conservation Association; Does not count monuments expanded from previous designations)
현재 우리나라의 보호지역 면적은 상대적으로 매우 좁으며 이 지역들 또한 개발압력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고 보호지역의 확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보호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보호지역을 지정한다면 보호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뿐 아니라 지지부진한 보호지역 확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은퇴 후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될 것이다. 시간이 멈춘 박물관의 기념물이 아니라 비록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장소 안에서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그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그리움의 장소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곳에 가서 내가 추억하는 대통령의 존재를 상상하게 되는 것, 이 때 보호지역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보호해야 하는 공간이 아닌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장소가 되는 것이다.
2010년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결의된 아이치목표의 첫 번째 목표가 ‘생물다양성의 가치와 지속가능한 보전을 위한 인식증진’이다. 일반인들에까지 보호지역과 생물다양성에 대한 가치가 개발에 의한 가치보다 훨씬 높음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이 목표의 달성기한인 2020년이 이제 코앞에 와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공항 건설을 위해 국립공원 해제를 요구하는 수준에 있다. 대통령에 쥐어주는 작은 권한은 보호지역에 대한 인식증진을 따뜻한 감성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공익을 위해, 그리고 대통령이었다는 역사에 기록되는 분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 하나쯤은 추가로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대통령이 은퇴 후에 지지자들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에서 가끔 가지는 특권을 주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좋지 않을까?
글/ 부산대 홍석환 교수. 이 글은 초록숨소리 12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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