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강원 타운홀 미팅이 보여준 ‘토건 국가’의 균열과 이재명 대통령의 딜레마와 모순

관리자
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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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강원 타운홀 미팅은 대한민국이 수십 년간 맹신해 온 '개발 우선주의' 패러다임이 중대한 변곡점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둘러싼 현장의 목소리는 자연을 바라보는 국가적 관점의 전환이 시급함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날 미팅은 동시에,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열망과 낡은 관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 정부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노출한 자리이기도 했다.


"자연을 공격하지 말라", 주민들의 성숙한 외침

이번 미팅의 핵심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아닌, 환경미화원 조한경 씨의 절박한 호소에서 빛을 발했다. "자연이 아프다"라는 그의 진단과 정부의 '공격적 발굴' 계획에 대해 "공격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은 현장의 큰 박수를 끌어냈다. 이는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자연을 공존의 주체로 인식하는 성숙한 생태 감수성의 발현이다.


그의 지적은 단순한 환경 보호 주장에 그치지 않았다. "152만 명이 하룻밤 머무는 것보다 52만 명이 사흘을 머물고 가는 것"이 낫다는 발언은, 인프라 확충을 통한 양적 팽창에서 벗어나 자연 본연의 가치를 보존하며 지속 가능한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명확한 대안을 제시했다. 강원도의 가장 큰 자산이 인공 시설물이 아닌 ‘천혜의 자연’ 그 자체라는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한다.


진일보한 통찰, 그러나 실망스러운 현실 인식의 괴리

이러한 현장의 정서에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공감을 표했다. 특히 대통령이 덕유산과 지리산 개발의 부작용을 직접 거론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케이블카 설치 이후 덕유산의 "신성함"과 "신비함이 다 사라져 버렸다"라는 회고와, "접근하기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자원이기도 하다"는 언급은 국가 최고지도자가 토건 중심 개발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연의 원형 보전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통찰은 설악산이라는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 힘을 잃고 말았다. 대통령은 오색케이블카 사업 중단 요구에 대해 "이미 너무 많이 가버린 거 아니에요?", "이건 나도 중지시키기 어려울걸요?"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대통령이 보여준 생태적 감수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다. 자연의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결단을 주저하는 것은 인식과 실천의 심각한 괴리를 드러낸다.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행정적 관성을 바로잡아야 할 최고 정책 결정권자가 스스로 행정 절차의 뒤에 숨는 것은 무책임하다. 대통령의 역할은 행정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이끄는 데 있다.


늦었다는 핑계,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

현장의 목소리는 명확했다. 양양 주민 김동일 씨는 이 사업이 40년간 정치적 논쟁거리였으며, 막대한 예산이 양양군에 전가되는 재정적 위험성을 지적하며 사업 중단을 강력히 요구했다. 현장에서의 즉석 거수에서도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김동일 씨가 지적했듯, 아직 실질적인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행정소송이 계류 중인 상황이다. "레고랜드처럼 늦기 전에" 결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미 환경 규제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사업 강행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훼손과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고려하면, 정책적 결단을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없다.


'토건 국가'를 넘어 '생태 국가'로 가는 시험대

이번 강원 타운홀 미팅은 대한민국 사회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강원도민들은 더 이상 과거의 개발 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했으며, 대통령 역시 자연의 고유한 가치에 대해 원론적으로는 동의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양적 팽창이라는 낡은 공식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성과 생태적 가치를 품는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통령은 "상황 보고를 받고, 한 번 검토해 보겠다"라고 답했지만, 이 문제는 더 이상 '검토'의 대상이 아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문제는 현 정부가 '토건 국가'의 관성을 극복하고 '생태 국가'로 전환할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만약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에 책임지지 않고 이 사업을 강행한다면, 그가 말한 생태적 감수성은 공허한 수사로 전락할 것이다. 정부는 미사여구가 아닌 실질적인 정책 결단으로, 강원의 자연이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자산임을 증명해야 한다.


2025년 9월 12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 케이블카반대설악권주민대책위


[문의] 국민행동 정인철 상황실장 (010-5490-1365), 이이자희 정책팀장 (010-435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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