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 불통의 임도 확대, '신뢰의 길'부터 놓아야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
우리에게 숲은 어떤 의미인가? 생명이 가득한 보고이자 마음의 안식처인가, 아니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수확해야 할 목재 자원인가. 산림청의 임도 확대 정책을 두고 ‘숲을 위한 길’이 아닌 ‘길을 위한 숲’이라는 날 선 비판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산에 길을 내는 토목 사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숲을 경제적 효용성으로만 판단해 온 과거 정책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재난의 사유화라는 그림자
‘재난 대응’이라는 반박하기 어려운 명분 뒤에는 ‘재난의 사유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숨어있다. 기후 위기라는 공동의 비극이 산림 관료와 토건 자본에는 예산을 늘릴 기회로 작용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공적 자원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유화되는 이 역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산림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30억 그루 나무 심기’ 중심의 탄소 중립 계획을 발표했을 때, 오래된 나무를 베고 어린나무를 심는다는 계획은 숲의 생태계를 기계처럼 취급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노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고, 2022년 취임한 남성현 산림청장은 ‘산림 르네상스’를 내걸고 임도 확대를 정책 최전선에 내세웠다. 숲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여기에 기후 변화가 불러온 재난의 공포는 임도 확대에 강력한 명분을 더했다. 2023년 대형 산불이 발생하자, 산림청장은 “산불 진화를 위해 임도가 필수”라며 독일, 오스트리아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국내 임도 밀도를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하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임도 부족’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논란을 키웠다. 국립공원은 환경부 관할임에도 산림청이 임도 신설을 밀어붙이는 것은, 기후 위기 시대에 산림 분야의 주도권을 쥐려는 관료 조직의 ‘영역 확장’ 욕망으로 읽힌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대립은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 논의를 실종시켰고, 이는 사회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됐다.
낡은 효율주의를 넘어, 새로운 생태적 가치로
이번 임도 논쟁은 ‘개발이냐 보전이냐’라는 낡은 이분법이 아니다. 숲을 인간의 편익을 위한 ‘자원’으로만 보는 낡은 관점과,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새로운 가치관이 충돌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산림청은 숲을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임도를 효율 극대화의 도구로 여기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숲을 무수한 생명이 공존하는 생명 공동체이자 기후 위기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무분별한 임도 건설을 ‘숲의 혈관’을 끊는 파괴 행위로 본다.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진정한 보전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 거대한 관점의 차이 속에서, 숲으로 생계를 꾸리는 임업인들의 현실적인 기반 시설 논의는 설 자리를 잃고 출구 없는 대결로 치닫고 있다.
선택적 정보가 무너뜨린 신뢰
2025년 발생한 대형 산불은 해묵은 논쟁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산불 원인으로 침엽수 중심의 획일적인 경제림 조성이 지목되면서, 과거부터 비판받아 온 ‘숲가꾸기’ 사업의 본질적 문제가 다시 드러났다. 특히 임상섭 전 산림청장이 산불 진화가 늦어진 원인 중 하나로 ‘쌓인 낙엽’을 지목한 발언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자연 현상에 떠넘긴다는 분노를 샀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산림청이 편성한 4,200억 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재난 복구라는 명분 아래 진행될 막대한 토목 사업의 실질적 수혜자는 과연 누구인가. 산림청의 '산림 르네상스'가 '토건 르네상스'로 귀결될 수 있다는 의심이 깊어지는 이유다. 오스트리아의 높은 임도 밀도만 강조하고, 임도 건설이 초래할 산림 파괴와 생물다양성 감소라는 부작용은 외면하는 ‘선택적 정보 활용’ 역시 정책 신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
속도보다 방향, 계획보다 합의
지난달, 전례 없는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결국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섰다. 대통령은 "이해관계 없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과학적 검증을 거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선정한 소수의 ‘전문가’가 내놓는 보고서로 사회적 합의를 대체하려는, 또 다른 밀실 행정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정책의 목표보다 ‘방식’의 문제였다. 일방적 정책 추진, 거듭된 실언, 합의 없는 예산 편성은 “재난을 핑계로 국토를 파헤치려는 것 아니냐”라는 근본적 의심만 키웠다. 이 불신의 고리를 끊을 해법은 산림청의 긍정적인 태도 변화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과학’이 아니라, 투명한 정보 공개를 바탕으로 한 ‘시민 지성의 공론장’이다.
결국 이 논쟁은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되는 ‘숲의 시간’과 단기적 실적을 좇는 ‘인간의 시간’ 사이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계획이 아니라 합의다. 경제림 육성 중심의 낡은 패러다임부터 관 주도의 의사결정 구조까지, 산림 정책 전반을 수술대에 올리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숲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우리 사회의 수준을 증명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 숲과 우리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시론] 불통의 임도 확대, '신뢰의 길'부터 놓아야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
우리에게 숲은 어떤 의미인가? 생명이 가득한 보고이자 마음의 안식처인가, 아니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수확해야 할 목재 자원인가. 산림청의 임도 확대 정책을 두고 ‘숲을 위한 길’이 아닌 ‘길을 위한 숲’이라는 날 선 비판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산에 길을 내는 토목 사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숲을 경제적 효용성으로만 판단해 온 과거 정책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재난의 사유화라는 그림자
‘재난 대응’이라는 반박하기 어려운 명분 뒤에는 ‘재난의 사유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숨어있다. 기후 위기라는 공동의 비극이 산림 관료와 토건 자본에는 예산을 늘릴 기회로 작용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공적 자원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유화되는 이 역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산림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30억 그루 나무 심기’ 중심의 탄소 중립 계획을 발표했을 때, 오래된 나무를 베고 어린나무를 심는다는 계획은 숲의 생태계를 기계처럼 취급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노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고, 2022년 취임한 남성현 산림청장은 ‘산림 르네상스’를 내걸고 임도 확대를 정책 최전선에 내세웠다. 숲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여기에 기후 변화가 불러온 재난의 공포는 임도 확대에 강력한 명분을 더했다. 2023년 대형 산불이 발생하자, 산림청장은 “산불 진화를 위해 임도가 필수”라며 독일, 오스트리아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국내 임도 밀도를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하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임도 부족’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논란을 키웠다. 국립공원은 환경부 관할임에도 산림청이 임도 신설을 밀어붙이는 것은, 기후 위기 시대에 산림 분야의 주도권을 쥐려는 관료 조직의 ‘영역 확장’ 욕망으로 읽힌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대립은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 논의를 실종시켰고, 이는 사회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됐다.
낡은 효율주의를 넘어, 새로운 생태적 가치로
이번 임도 논쟁은 ‘개발이냐 보전이냐’라는 낡은 이분법이 아니다. 숲을 인간의 편익을 위한 ‘자원’으로만 보는 낡은 관점과,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새로운 가치관이 충돌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산림청은 숲을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임도를 효율 극대화의 도구로 여기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숲을 무수한 생명이 공존하는 생명 공동체이자 기후 위기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무분별한 임도 건설을 ‘숲의 혈관’을 끊는 파괴 행위로 본다.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진정한 보전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 거대한 관점의 차이 속에서, 숲으로 생계를 꾸리는 임업인들의 현실적인 기반 시설 논의는 설 자리를 잃고 출구 없는 대결로 치닫고 있다.
선택적 정보가 무너뜨린 신뢰
2025년 발생한 대형 산불은 해묵은 논쟁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산불 원인으로 침엽수 중심의 획일적인 경제림 조성이 지목되면서, 과거부터 비판받아 온 ‘숲가꾸기’ 사업의 본질적 문제가 다시 드러났다. 특히 임상섭 전 산림청장이 산불 진화가 늦어진 원인 중 하나로 ‘쌓인 낙엽’을 지목한 발언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자연 현상에 떠넘긴다는 분노를 샀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산림청이 편성한 4,200억 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재난 복구라는 명분 아래 진행될 막대한 토목 사업의 실질적 수혜자는 과연 누구인가. 산림청의 '산림 르네상스'가 '토건 르네상스'로 귀결될 수 있다는 의심이 깊어지는 이유다. 오스트리아의 높은 임도 밀도만 강조하고, 임도 건설이 초래할 산림 파괴와 생물다양성 감소라는 부작용은 외면하는 ‘선택적 정보 활용’ 역시 정책 신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
속도보다 방향, 계획보다 합의
지난달, 전례 없는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결국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섰다. 대통령은 "이해관계 없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과학적 검증을 거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선정한 소수의 ‘전문가’가 내놓는 보고서로 사회적 합의를 대체하려는, 또 다른 밀실 행정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정책의 목표보다 ‘방식’의 문제였다. 일방적 정책 추진, 거듭된 실언, 합의 없는 예산 편성은 “재난을 핑계로 국토를 파헤치려는 것 아니냐”라는 근본적 의심만 키웠다. 이 불신의 고리를 끊을 해법은 산림청의 긍정적인 태도 변화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과학’이 아니라, 투명한 정보 공개를 바탕으로 한 ‘시민 지성의 공론장’이다.
결국 이 논쟁은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되는 ‘숲의 시간’과 단기적 실적을 좇는 ‘인간의 시간’ 사이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계획이 아니라 합의다. 경제림 육성 중심의 낡은 패러다임부터 관 주도의 의사결정 구조까지, 산림 정책 전반을 수술대에 올리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숲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우리 사회의 수준을 증명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 숲과 우리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