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9일, 부산 벡스코에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막을 올렸습니다. 오는 2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회의는 우리나라가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입니다.
전 세계 전문가와 각국 대표단이 모인 국제 행사장이었지만, 회의장 밖의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한국환경회의 등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대규모 공동행동을 전개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현장에 모인 이들의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는 유산의 '등재'와 홍보에만 열을 올릴 뿐, 등재 이후의 실효적인 보전 의무는 외면한 채 난개발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센텀시티역을 출발해 회의장 일대를 행진하며 한국의 세계유산 관리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렸던 그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드립니다.
보존인가, 개발인가: 엇갈린 잣대와 모순적 행정
가장 먼저 단상에 오른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의 김지은 공동집행위원장은 갯벌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되물었습니다. 서천갯벌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생태적으로 연결된 수라갯벌 역시 지켜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지난해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 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입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조류 충돌 위험성을 비교 검토하지 않았고 그 위험도를 의도적으로 축소한 점이 인정되어, 재판부는 이 기본계획이 이익형량의 정당성과 객관성을 갖추지 못해 계획재량을 일탈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업지에 서식하는 법정보호종 조류와 인근 서천갯벌 보전에 미치는 영향 역시 부실하게 조사·평가됐다는 점도 함께 지적됐습니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사업은 지금도 강행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갯벌은 자본의 소유가 아니라 미래의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온전히 남겨야 할 유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문화유산 정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태릉과 종묘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태릉에서는 중앙정부가 개발을 추진하고 서울시가 반대하는 반면, 종묘에서는 정반대로 서울시가 개발을 밀어붙이고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황 소장은 보존 원칙이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유네스코가 실효적인 권고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설악산, 가덕도, 그리고 인천 갯벌
이어진 발언들에서는 각 지역 현안의 절박함이 묻어났습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박그림 공동대표는 설악산을 두고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지키겠다는 우리 세대의 약속"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립공원이자 생물권보전지역 등 겹겹의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설악산에 오색케이블카라는 개발의 칼날이 들어오는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으며, 사업이 백지화될 때까지 감시하겠다는 결의를 밝혔습니다.
회의가 열린 부산의 현안도 빠질 수 없었습니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김현욱 집행위원은 부산시 행정의 이중성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한국전쟁 피란수도 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도, 신공항을 짓기 위해 120년 역사의 외양포 포진지 등 근현대 자산을 정작 대상에서 배제하는 행태를 꼬집은 것입니다. 그는 천연기념물 큰고니의 국내 최대 월동지로 매년 겨울 3천여 마리가 찾아오는 낙동강 하구와 가덕도를 유네스코 정신에 맞게 온전히 보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천갯벌세계자연유산추진협력단 신정은 활동가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성과를 행정이 무너뜨려선 안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정치권의 약속 이행이 지지부진한 사이, 시민들은 남동유수지의 멸종위기종 저어새 서식지를 지켜냈습니다. 그 결과 IUCN은 저어새의 등급을 '위기(EN)'에서 '취약(VU)'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다만 등급 하향 이후 오히려 개체수가 줄어든 사례도 있는 만큼, 이 성과가 단기적인 개발 논리에 훼손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보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신 활동가의 요구였습니다.

"No protection, no heritage"
발언이 끝난 후 진행된 퍼포먼스는 현장의 숙연함을 더했습니다. 산양, 저어새 등 멸종위기종을 형상화한 소품으로 '사슬에 묶인 자연'을 연출한 참가자들은 단체 다잉(dying)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이어 국제 회의장을 향해 행진하며 개발 사업 중단과 세계유산 보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세계유산의 진정한 가치는 타이틀 획득이나 화려한 홍보에 있지 않습니다. 지속 가능하고 온전한 보전이 담보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개발 중심의 모순을 직시하고 합리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어낼 때까지, 현장을 지키는 시민사회의 끈질긴 감시와 행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 곁의 소중한 자연과 유산이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이들의 행보에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7월 19일, 부산 벡스코에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막을 올렸습니다. 오는 2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회의는 우리나라가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입니다.
전 세계 전문가와 각국 대표단이 모인 국제 행사장이었지만, 회의장 밖의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한국환경회의 등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대규모 공동행동을 전개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현장에 모인 이들의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는 유산의 '등재'와 홍보에만 열을 올릴 뿐, 등재 이후의 실효적인 보전 의무는 외면한 채 난개발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센텀시티역을 출발해 회의장 일대를 행진하며 한국의 세계유산 관리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렸던 그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드립니다.
보존인가, 개발인가: 엇갈린 잣대와 모순적 행정
가장 먼저 단상에 오른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의 김지은 공동집행위원장은 갯벌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되물었습니다. 서천갯벌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생태적으로 연결된 수라갯벌 역시 지켜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지난해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 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입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조류 충돌 위험성을 비교 검토하지 않았고 그 위험도를 의도적으로 축소한 점이 인정되어, 재판부는 이 기본계획이 이익형량의 정당성과 객관성을 갖추지 못해 계획재량을 일탈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업지에 서식하는 법정보호종 조류와 인근 서천갯벌 보전에 미치는 영향 역시 부실하게 조사·평가됐다는 점도 함께 지적됐습니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사업은 지금도 강행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갯벌은 자본의 소유가 아니라 미래의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온전히 남겨야 할 유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문화유산 정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태릉과 종묘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태릉에서는 중앙정부가 개발을 추진하고 서울시가 반대하는 반면, 종묘에서는 정반대로 서울시가 개발을 밀어붙이고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황 소장은 보존 원칙이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유네스코가 실효적인 권고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설악산, 가덕도, 그리고 인천 갯벌
이어진 발언들에서는 각 지역 현안의 절박함이 묻어났습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박그림 공동대표는 설악산을 두고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지키겠다는 우리 세대의 약속"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립공원이자 생물권보전지역 등 겹겹의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설악산에 오색케이블카라는 개발의 칼날이 들어오는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으며, 사업이 백지화될 때까지 감시하겠다는 결의를 밝혔습니다.
회의가 열린 부산의 현안도 빠질 수 없었습니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김현욱 집행위원은 부산시 행정의 이중성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한국전쟁 피란수도 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도, 신공항을 짓기 위해 120년 역사의 외양포 포진지 등 근현대 자산을 정작 대상에서 배제하는 행태를 꼬집은 것입니다. 그는 천연기념물 큰고니의 국내 최대 월동지로 매년 겨울 3천여 마리가 찾아오는 낙동강 하구와 가덕도를 유네스코 정신에 맞게 온전히 보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천갯벌세계자연유산추진협력단 신정은 활동가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성과를 행정이 무너뜨려선 안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정치권의 약속 이행이 지지부진한 사이, 시민들은 남동유수지의 멸종위기종 저어새 서식지를 지켜냈습니다. 그 결과 IUCN은 저어새의 등급을 '위기(EN)'에서 '취약(VU)'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다만 등급 하향 이후 오히려 개체수가 줄어든 사례도 있는 만큼, 이 성과가 단기적인 개발 논리에 훼손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보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신 활동가의 요구였습니다.
"No protection, no heritage"
발언이 끝난 후 진행된 퍼포먼스는 현장의 숙연함을 더했습니다. 산양, 저어새 등 멸종위기종을 형상화한 소품으로 '사슬에 묶인 자연'을 연출한 참가자들은 단체 다잉(dying)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이어 국제 회의장을 향해 행진하며 개발 사업 중단과 세계유산 보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세계유산의 진정한 가치는 타이틀 획득이나 화려한 홍보에 있지 않습니다. 지속 가능하고 온전한 보전이 담보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개발 중심의 모순을 직시하고 합리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어낼 때까지, 현장을 지키는 시민사회의 끈질긴 감시와 행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 곁의 소중한 자연과 유산이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이들의 행보에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