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모두에게 희망고문이 된 설악산 행정심판 (글/ 정인철 사무국장)

admin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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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뒤집혔다. 2019년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로 일단락된 설악산오색케이블카사업이 다시금 추진되는 상황이 되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이하 중앙행심위)가 부동의 결정이 위법했다며 사업자 편을 들어준 것이다. 중앙행심위는 앞선 문화재위원회 부결 결정도 취소시킨바 있다. 행정심판은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 등으로 권리 및 이익을 침해 받은 국민이 신속하고 간편하게 법적으로 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발업자를 구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듯하다. 이번 행정심판으로 환경영향평가제도 역시 무용지물이 되었다. 사업백지화로 가는 길이 참으로 멀게만 느껴진다.
 


심각한 오판
중앙행심위는 설악산오색케이블카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면제대상이고, 국립공원위원회 공원계획변경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자연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으므로 입지 타당성은 이미 검토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환경영향평가단계에서 입지 타당성을 재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동의한 것은 관련 규정 취지에 반한다는 결론을 냈다. 더불어 사업자에게 추가로 보완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두 가지 사유를 바탕으로 사업자에게 처분한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처분을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중앙행심위는 심각한 오판을 저질렀다. 우선,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사업은 ‘환경영향평가서 작성규정’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입지를 대안으로 설정하여 평가할 수 있다. 더군다나 국립공원위원회 부대조건들은 사업계획 적정성, 입지 타당성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중앙행심위는 법만 보고, 법에서 위임한 예규들은 검토하지 않은 것이다.
사업자에게 추가보완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영향평가법 상 보완요구는 2회가 가능한 것이 맞다. 그러나 예규에는 1회 보완을 원칙으로 하고, 협의기관은 평가서 작성 시 중요한 사항을 누락하거나 거짓 작성하여 반려 대상이 될 경우에만 1회를 추가로 보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히려 이 규정은 사업자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준인데, 중앙행심위의 심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희망고문
처음 시작은 40년 전인 1982년이다. 강원도가 오색에서 중청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사업을 신청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등반객 급증으로 설악산 정상부 오염이 가속될 것이라는 이유로 사업추진을 불허했다. 30년이 지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MB노믹스라는 규제완화 광풍은 국립공원에도 불었다. 이명박 정부는 설악산케이블카를 국립공원 삭도 시범사업으로 선정했다. 지역주민들은 열광했다. 사업추진가능성이 높아지자 들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립공원위원회가 두 차례나 부결하자, 기대감은 금세 꺾였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섰다. 전경련이 사업 재추진을 건의하자, 조속히 시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리고 2015년 8월에 국립공원위원회는 기존 결정을 뒤엎고 조건부로 사업을 승인했다. 문화재위원회는 다른 결정을 했다. 천연보호구역에 미칠 영향이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다시 불허결정을 했다. 사업자는 이에 불복하고, 행정심판의 문을 두드렸다. 중앙행심위는 문화재위원회 처분이 부당하다며 사업자 손을 들어줬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본격적인 환경영향검토가 시작되었다. 환경정책제도개선위원회는 적폐사업으로 규정했고, 환경부는 2019년에 환경영향평가를 부동의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중앙행심위가 이 결정을 뒤집었다. 지난 40년 간, 사업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이들에게 계속된 희망고문만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설악산오색케이블카사업은 치킨게임과도 같다. 결국은 이기고 지는 당사자가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농락이 끝나지 않는 이상 희망고문도 계속될 것이다. 행정손실과 사회적 갈등은 누적되어가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피로감은 쌓여갈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작금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으니 답답한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산악관광 운운하며 산악강탈이 아닌 지역주민과 설악산을 위해 대안을 제시할 방안을 마련해야한다. 그것이 희망고문에서 벗어나 모두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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