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연기념물이자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칠발도
칼새와 바다제비가 도는 섬, 칠발도에서
쇠무릎을 걷어내고 밀사초를 되살리는 일, 그리고 시민과학의 몫
배가 신안 앞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동안, 저 멀리 칠발도가 작은 실루엣으로 다가왔다. 천연기념물 제332호,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특별보호구역. 이름만 들으면 단단하고 엄격한 섬 같지만, 막상 눈앞에 두면 바위 절벽 위에 초록빛 밀사초가 덮인, 어딘가 애틋한 무인도다.
7월 24일, 이 섬에 발을 디뎠다. 바다제비를 위협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시민의 손으로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그 첫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섬을 도는 칼새들
배가 섬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분주해졌다. 칼새였다. 긴 날개를 활처럼 접었다 펴며, 섬 주변 허공을 쉼 없이 돌고 있었다. 착륙할 자리를 찾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섬을 감싸듯 원을 그리며 나는 그 모습이 오래 눈에 남았다.
칼새가 찾아왔다는 건, 이 섬이 여전히 바닷새들에게 '집'이라는 뜻이다. 바다제비, 바다쇠오리, 슴새, 그리고 칼새까지. 칠발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바닷새 집단번식지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바다제비 번식지다. 저 칼새들의 비행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풍경을 지켜야 한다는 무게가 어깨에 얹혔다.

칠발도 방문을 맞이해준 칼새
곳곳의 쇠무릎, 그리고 걱정
섬에 올라 밀사초 군락 사이를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하면서도 반갑지 않은 풀이 눈에 들어왔다. 쇠무릎이었다. 한 포기, 두 포기가 아니라 섬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쇠무릎이 왜 문제인가. 이 풀의 열매와 종자는 갈고리처럼 생겨서 바다제비의 깃털과 날개에 들러붙는다. 한번 엉키면 새는 제대로 날지 못하고, 굴을 드나들지 못하며, 끝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실제로 2013년에는 이 쇠무릎에 얽혀 429마리의 바다제비가 폐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매년 300에서 500마리가 피해를 입는다는 보고도 있었다.

칠발도 쇠무릎 실태를 조사중인 연구진,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
다행히 국립공원공단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한 쇠무릎 제거와 밀사초 복원 작업 이후, 폐사체는 눈에 띄게 줄었다(2019년 0개체, 2022년 20개체). 하지만 2024년 조사에서도 쇠무릎은 여전히 밀사초 다음으로 섬에서 세력이 강한 식물이었다. 밀사초 군락 안에서 쇠무릎의 중요치가 15%를 넘는다는 수치는, 이 문제가 결코 '끝난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눈앞의 쇠무릎을 보며, 그 숫자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굴을 지켜낸 바다제비
그리고 마침내, 바다제비의 굴 앞에 섰다.
바다제비는 깊은 굴, 안정된 토양, 그리고 밀사초의 촘촘한 은폐 구조를 갖춘 곳에 둥지를 튼다. 이 세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알을 지키고 새끼를 이소시킬 수 있다. 굴이 얕거나 밖으로 노출되면 알은 쉽게 부패하거나 깨진다.
이 힘든 조건을 뚫고, 바다제비는 굴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작은 굴 하나가 여름철 도래해서 산란하고 부화시키고 새끼를 길러내는 온 생애의 무대다. 대견하고, 또 아슬아슬했다.

바다제비 굴
문제는 그 굴 주변을 둘러싼 위협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발에 붙는 쇠무릎만이 아니다. 둥지굴 안으로 흘러든 끈과 나일론망에 몸이 얽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위험, 사람의 잦은 출입으로 인한 답압과 지중 굴의 붕괴, 배와 장비를 따라 들어오는 외래 식물, 밀사초 군락이 줄어들며 좁아지는 은폐 공간, 그리고 바다에서의 폐어구 얽힘과 혼획까지. 이 위협들이 한꺼번에, 겹겹이 이 섬에 쌓여 있었다.
접근이 쉬운 남사면의 번식 성공률(64.4%)이 북사면(83.9%), 서사면(86.4%)보다 낮다는 자료도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쉬운 곳일수록 새들이 더 힘겨워한다는 뜻이다. 굴 하나를 지켜낸 바다제비의 대견함 뒤로, 그 심각성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제거와 복원, 그리고 그다음
이날 현장에서 우리는 한 가지 방향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쇠무릎을 어떻게 걷어내고, 밀사초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지금까지의 경험은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쇠무릎을 제거하고 밀사초를 복원하자 바다제비 폐사가 크게 줄었다는 사실. 위해식생을 관리하는 일은 그 자체로 바다제비의 생존과 직결된다. 방향은 명확했다. 쇠무릎은 꽃이 피고 씨앗이 여물기 전에 걷어내고, 밀사초 군락은 유지하고 넓혀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 서 보니 한 가지가 더 분명해졌다. 이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밀사초와, 쇠무릎. 바닷새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연구원
모니터링을 넘어서
이 지점에서 붙든 화두가 '시민과학'이다.
무인도서인 칠발도는 상시 주둔이 어렵다. 관리 인력만으로는 이 넓은 섬의 식생 변화와 새들의 번식 상황을 촘촘히 지켜볼 수 없다. 시민의 눈과 손이 더해질 때, 비로소 이 섬을 제대로 돌볼 수 있다.
다만 오늘 현장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시민과학이 '단순한 모니터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위협은 쇠무릎 하나가 아니었다. 식생, 인공물, 출입, 외래종, 해양오염이 서로 얽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새 한 마리를 기록하는 일과, 그 새를 실제로 살려내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다고 몇 사람의 발품만으로 될 일도, 기록을 쌓아 두는 것만으로 될 일도 아니었다. 그 기록이 믿을 수 있게 정리되어, 이 섬을 앞으로 어떻게 돌볼지 정하는 자리에까지 가 닿아야 비로소 힘을 갖는다. 결국 칠발도가 남긴 고민은, 무엇이 있는지 세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걷어내야 하는지까지 함께 움직이는 일이었다. 국립공원공단과 시민과학이 감당해야 할 몫이 생각보다 크고, 그래서 더 필요하다는 것.
돌아오는 배 위에서
섬을 떠나는 배 위에서 다시 칼새들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섬을 돌고 있었다.
저 새들이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섬을 찾아오게 하려면, 우리가 오늘 시작한 이 이야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쇠무릎을 걷어내는 손, 밀사초를 지키는 눈, 그리고 그 모두를 잇는 시민의 참여.
칠발도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글. 정인철(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
천연기념물이자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칠발도
칼새와 바다제비가 도는 섬, 칠발도에서
쇠무릎을 걷어내고 밀사초를 되살리는 일, 그리고 시민과학의 몫
배가 신안 앞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동안, 저 멀리 칠발도가 작은 실루엣으로 다가왔다. 천연기념물 제332호,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특별보호구역. 이름만 들으면 단단하고 엄격한 섬 같지만, 막상 눈앞에 두면 바위 절벽 위에 초록빛 밀사초가 덮인, 어딘가 애틋한 무인도다.
7월 24일, 이 섬에 발을 디뎠다. 바다제비를 위협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시민의 손으로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그 첫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섬을 도는 칼새들
배가 섬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분주해졌다. 칼새였다. 긴 날개를 활처럼 접었다 펴며, 섬 주변 허공을 쉼 없이 돌고 있었다. 착륙할 자리를 찾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섬을 감싸듯 원을 그리며 나는 그 모습이 오래 눈에 남았다.
칼새가 찾아왔다는 건, 이 섬이 여전히 바닷새들에게 '집'이라는 뜻이다. 바다제비, 바다쇠오리, 슴새, 그리고 칼새까지. 칠발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바닷새 집단번식지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바다제비 번식지다. 저 칼새들의 비행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풍경을 지켜야 한다는 무게가 어깨에 얹혔다.
칠발도 방문을 맞이해준 칼새
곳곳의 쇠무릎, 그리고 걱정
섬에 올라 밀사초 군락 사이를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하면서도 반갑지 않은 풀이 눈에 들어왔다. 쇠무릎이었다. 한 포기, 두 포기가 아니라 섬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쇠무릎이 왜 문제인가. 이 풀의 열매와 종자는 갈고리처럼 생겨서 바다제비의 깃털과 날개에 들러붙는다. 한번 엉키면 새는 제대로 날지 못하고, 굴을 드나들지 못하며, 끝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실제로 2013년에는 이 쇠무릎에 얽혀 429마리의 바다제비가 폐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매년 300에서 500마리가 피해를 입는다는 보고도 있었다.
칠발도 쇠무릎 실태를 조사중인 연구진,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
다행히 국립공원공단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한 쇠무릎 제거와 밀사초 복원 작업 이후, 폐사체는 눈에 띄게 줄었다(2019년 0개체, 2022년 20개체). 하지만 2024년 조사에서도 쇠무릎은 여전히 밀사초 다음으로 섬에서 세력이 강한 식물이었다. 밀사초 군락 안에서 쇠무릎의 중요치가 15%를 넘는다는 수치는, 이 문제가 결코 '끝난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눈앞의 쇠무릎을 보며, 그 숫자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굴을 지켜낸 바다제비
그리고 마침내, 바다제비의 굴 앞에 섰다.
바다제비는 깊은 굴, 안정된 토양, 그리고 밀사초의 촘촘한 은폐 구조를 갖춘 곳에 둥지를 튼다. 이 세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알을 지키고 새끼를 이소시킬 수 있다. 굴이 얕거나 밖으로 노출되면 알은 쉽게 부패하거나 깨진다.
이 힘든 조건을 뚫고, 바다제비는 굴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작은 굴 하나가 여름철 도래해서 산란하고 부화시키고 새끼를 길러내는 온 생애의 무대다. 대견하고, 또 아슬아슬했다.
바다제비 굴
문제는 그 굴 주변을 둘러싼 위협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발에 붙는 쇠무릎만이 아니다. 둥지굴 안으로 흘러든 끈과 나일론망에 몸이 얽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위험, 사람의 잦은 출입으로 인한 답압과 지중 굴의 붕괴, 배와 장비를 따라 들어오는 외래 식물, 밀사초 군락이 줄어들며 좁아지는 은폐 공간, 그리고 바다에서의 폐어구 얽힘과 혼획까지. 이 위협들이 한꺼번에, 겹겹이 이 섬에 쌓여 있었다.
접근이 쉬운 남사면의 번식 성공률(64.4%)이 북사면(83.9%), 서사면(86.4%)보다 낮다는 자료도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쉬운 곳일수록 새들이 더 힘겨워한다는 뜻이다. 굴 하나를 지켜낸 바다제비의 대견함 뒤로, 그 심각성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제거와 복원, 그리고 그다음
이날 현장에서 우리는 한 가지 방향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쇠무릎을 어떻게 걷어내고, 밀사초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지금까지의 경험은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쇠무릎을 제거하고 밀사초를 복원하자 바다제비 폐사가 크게 줄었다는 사실. 위해식생을 관리하는 일은 그 자체로 바다제비의 생존과 직결된다. 방향은 명확했다. 쇠무릎은 꽃이 피고 씨앗이 여물기 전에 걷어내고, 밀사초 군락은 유지하고 넓혀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 서 보니 한 가지가 더 분명해졌다. 이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밀사초와, 쇠무릎. 바닷새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연구원
모니터링을 넘어서
이 지점에서 붙든 화두가 '시민과학'이다.
무인도서인 칠발도는 상시 주둔이 어렵다. 관리 인력만으로는 이 넓은 섬의 식생 변화와 새들의 번식 상황을 촘촘히 지켜볼 수 없다. 시민의 눈과 손이 더해질 때, 비로소 이 섬을 제대로 돌볼 수 있다.
다만 오늘 현장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시민과학이 '단순한 모니터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위협은 쇠무릎 하나가 아니었다. 식생, 인공물, 출입, 외래종, 해양오염이 서로 얽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새 한 마리를 기록하는 일과, 그 새를 실제로 살려내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다고 몇 사람의 발품만으로 될 일도, 기록을 쌓아 두는 것만으로 될 일도 아니었다. 그 기록이 믿을 수 있게 정리되어, 이 섬을 앞으로 어떻게 돌볼지 정하는 자리에까지 가 닿아야 비로소 힘을 갖는다. 결국 칠발도가 남긴 고민은, 무엇이 있는지 세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걷어내야 하는지까지 함께 움직이는 일이었다. 국립공원공단과 시민과학이 감당해야 할 몫이 생각보다 크고, 그래서 더 필요하다는 것.
돌아오는 배 위에서
섬을 떠나는 배 위에서 다시 칼새들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섬을 돌고 있었다.
저 새들이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섬을 찾아오게 하려면, 우리가 오늘 시작한 이 이야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쇠무릎을 걷어내는 손, 밀사초를 지키는 눈, 그리고 그 모두를 잇는 시민의 참여.
칠발도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글. 정인철(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